네 편의 <성육신의 비밀>에서 발췌한 말씀

네 편의 <성육신의 비밀>에서 발췌한 말씀

1. 은혜시대에 요한은 예수를 위해 길을 닦는 사역을 했다. 그는 사람의 본분을 이행했을 뿐,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할 수 없었다. 요한이 주의 선봉장이기는 했지만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에 불과할 뿐 하나님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예수가 세례를 받자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에게 임했고’, 그때부터 그는 사역을 시작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직분을 이행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에게 하나님의 신분이 생기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이다. 그전에 그가 어떻게 믿었든, 연약할 때도 있고 강할 때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모두 직분을 이행하기 이전 정상 인성의 생활이었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기름 부음을 받은) 직후 바로 능력이 따랐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와 함께하였으며, 그는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적과 기사를 보이고, 이적을 행하며, 능력과 권능을 가졌던 것은 그가 직접 하나님을 대표해 사역하고, 영을 대신해 사역하고, 영의 음성을 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의심할 여지 없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요한은 성령께 쓰임 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을 대표하지 못하며, 대표할 수도 없다. 요한이 하나님을 대표하려고 했다면 성령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요한에게 사람의 뜻이 많을 수도 있고 치우친 점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는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요한의 잘못과 그릇됨은 그 본인을 대변한다. 그러나 그가 사역한 부분은 성령을 대변한다. 그렇다고 그의 전부가 하나님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설마 그의 치우침과 그릇됨까지도 하나님을 대변한다는 말이냐? 사람을 대변할 때는 치우침과 그릇됨이 있어도 정상이지만, 하나님을 대변하는데도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성령은 함부로 사람을 하나님의 자리에 세우지 않는다. 사람들이 높이 받드는 사람이라도 안 된다. 하나님이 아니라면 결국 그 자리에 온전히 설 수 없다. 사람이 함부로 하나님을 대표하려 한다면 성령은 용납하지 않는다. 요한의 경우도 성령이 증거한 사람이고 예수의 길을 닦는 자라고 성령이 밝힌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령이 요한에게 행한 사역은 상당히 적절했다. 예수의 길을 닦는 사람으로서 예수를 위해 길만 닦게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은 요한의 길 닦는 사역만 수호했으며, 길을 닦는 것 외에 다른 일은 허락하지 않았다. 요한은 엘리야를 대표하며 길을 닦는 선지자를 대표한다. 그래서 그런 사역은 성령이 수호했다. 요한의 길 닦는 사역을 위한 것이라면 성령은 모두 수호하였다. 하지만 요한이 하나님을 자처하며 자기가 구속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면 성령은 그를 징계했을 것이다. 요한이 한 사역이 아무리 크고 성령의 수호를 받았을지라도 그의 사역은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성령이 요한의 사역을 수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 그에게 부여한 능력은 길을 닦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역은 그가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는 예수가 아니라 그저 길을 닦는 요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증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사람이 하는 사역을 성령이 허락하는지가 그보다 더 중요하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1> 중에서

2. 악령이 들려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계속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드러나고 말았다. 그들이 나타낼 대상을 잘못 골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탄을 나타내기 때문에 성령은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대단하게 말하고 그럴듯하게 외쳐 대도 사탄에 속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나는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외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 있다. 그런데 굳이 외칠 필요가 있겠느냐? 높이 치켜세울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지위나 어떤 존칭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가 하는 사역이 바로 그의 신분과 지위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세례를 받기 전에도 하나님 자신이 아니었느냐?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었느냐? 설마 그가 증거된 후에야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었단 말이냐? 그가 사역을 하기 전부터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있지 않았느냐? 네가 새 길을 열지 못하면 영을 대표할 수 없다. 네가 영의 사역과 영의 말씀을 선포할 수도 없고 또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고 영이 하는 일도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함, 난측함, 사람을 형벌하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수도 없다면, 네가 아무리 하나님을 자처해도 허울만 있을 뿐 소용없다. 하나님이 왔을 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을지라도 그는 계속 사역을 행하며, 또한 영을 대표해 사역한다. 네가 그를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고, 하나님이라고 불러도 좋고, 주님이든 그리스도든 자매든 어떻게 불러도 괜찮다. 하지만 그가 하는 사역은 영의 사역을 대변하고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대변한다. 그는 사람이 자신을 뭐라고 부르든 개의치 않는다. 사람이 그에게 붙인 호칭으로 그의 사역을 결정할 수 있겠느냐? 네가 그를 뭐라고 부르든 하나님이 보기에 그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고 영을 대표하는 존재이며 영이 인정하는 존재이다. 네가 새 시대의 길을 개척하지 못하고 옛 시대를 끝낼 수도, 새 시대를 열 수도 없고 새 사역도 할 수 없다면, 하나님이라고 칭할 수 없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1> 중에서

3.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비단 그 사람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가 하는 사역도 하나님을 직접 대변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의 체험을 직접 하나님의 경영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 ‘사람의 체험’이 ‘하나님의 경영’을 뜻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모두 그의 경영에 따라 하고자 하는 사역이며 커다란 경영에 관계된 일이다. 반면 사람(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모두 개인의 체험을 공급하고 앞사람이 개척한 길을 이어 다른 체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이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 다른 형제자매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들이 공급하는 것은 개인의 체험이나 영적 인물의 영적 저술이다. 성령께 쓰임 받기는 하지만 그들의 사역은 6천년 경륜에서 큰 경영과 관계된 사역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단계별로 성령이 세운 사람으로, 자신의 역할과 수명이 다할 때까지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을 이끌 뿐이다. 그들이 하는 사역은 하나님을 위해 적합한 길을 예비하거나 땅에서 하나님이 행한 경영 사역의 한 부분을 이어 갈 뿐이다. 그들은 경영 안에서 더 큰 사역을 할 수가 없고, 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없으며, 더욱이 아무도 하나님의 옛 시대 사역을 끝낼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역은 피조물이 자신의 기능을 다하는 것을 의미할 뿐, 하나님 자신이 직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사역과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대를 여는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사역이 아니다. 이 사역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며, 성령의 감동이나 깨우침을 받아서 하는 사역이다. 그들의 사역은 일상생활에서 사람이 실행해야 하는 길과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하는 길을 이끌어 주는 것이다. 사람의 사역은 하나님의 경영과 관련이 없고 영의 사역을 대변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위트니스 리와 워치만 니가 한 사역은 모두 길을 인도하는 것이었다. 새 길이든 옛 길이든 성경을 벗어나지 않는 이런 원칙을 기반으로 행한 사역이다. 지방 교회를 회복시켰든 세웠든, 어쨌든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들은 은혜시대에 예수와 다른 제자들이 다하지 못했거나 심화시키지 못한 사역들을 이어서 행한 것이었다. 그들의 사역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세례를 받고, 떡을 떼거나 포도주를 마시는 것 등은 모두 예수가 사역할 당시 사람에게 요구했던 것을 회복하여 행한 것이었다. 그들의 사역은 모두 성경을 지키고 성경에서 길을 찾는 것이며, 새로운 진전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역을 보면, 성경에서 새 길을 발견하고 더 훌륭하고 현실적인 실행 방법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그 당시의 뜻을 찾아볼 수 없고, 말세에 하나님이 하려는 새로운 사역은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그들이 계속 옛 길을 가며 새로워지지 않고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과 ‘사람으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라는’ 실행을 고수하고,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과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며, 여자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라는 말을 지키며, 더욱이 “자매는 설교할 수 없고 순종하는 사람만 될 수 있다”라는 전통 관념을 고집하였다. 그들의 그런 방식대로 계속 이끌어 간다면 성령은 영원히 새 사역을 할 수 없고 사람을 규례에서 해방시킬 수 없으며 사람을 자유롭고 아름다운 경지로 인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시대를 바꾸는 이 단계 사역은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행하고 친히 말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지금은 이 흐름 밖에 있는 성령의 사역이 모두 정지되었고, 성령께 쓰임 받았던 사람들도 속수무책이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과 다르고, 그들의 신분이나 대표하는 대상도 다르다. 이는 성령이 하려는 사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로써, 각각의 사역에 따라 그 사역을 행하는 사람의 신분과 지위도 달라진다.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도 몇 가지 새로운 사역을 할 수 있고 몇 가지 옛 시대의 사역을 폐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하는 사역으로 하나님이 새 시대에 나타내려는 성품과 뜻을 나타낼 수는 없다. 그저 옛 시대의 사역을 버리기 위해 사역을 하는 것일 뿐, 직접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대변하는 새 사역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낡은 방식을 얼마나 버리든, 또는 새로운 방식을 얼마나 가져오든, 그들은 사람을 대표하고 피조물을 대표할 뿐이다. 반면 하나님이 직접 사역할 때는 공개적으로 옛 시대의 방식을 폐한다고 선포하지 않고 시대를 연다고 직접 선포하지도 않는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곧장 자신이 하려는 사역을 행한다. 즉, 곧바로 자신이 가져온 사역을 선포하고, 자신이 본래 하려는 사역을 행하며, 자신의 속성(원문: 所是)과 성품을 나타낸다. 사람이 보기에는 그의 성품이 과거 시대와 다르고 그의 사역도 과거의 시대와 다르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그저 사역을 이어 가고 더 심화시키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이 사역하는 것은 말씀을 선포하고 직접적으로 새로운 사역을 가져오는 것이지만, 사람이 사역하는 것은 곰곰이 헤아리거나 연구한 뒤에, 다른 사람이 도출한 결론을 기반으로[*] 인식을 심화하고 실행을 체계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하는 사역의 본질은 ‘정해진 대로 착실히 따르고’, ‘새 신을 신고 옛 길을 가는’ 것이다. 즉,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가는 길이라도 하나님이 친히 개척한 길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고,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1> 중에서

4. 요한은 아브라함에게서 태어난 이삭처럼 약속으로 태어났다. 그는 예수를 위해 길을 닦았고 많은 사역도 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선지자이다. 그는 예수를 위해 길을 닦는 일만 했기 때문이다. 그도 매우 큰 일을 했다. 그가 앞에서 길을 잘 닦아 놓은 후에 예수가 정식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를 위해 봉사한 것에 해당하며, 그가 한 사역은 예수의 사역에 이바지한 것이다. 예수는 요한이 길을 닦아 놓은 후에 사역을 시작했으며 더 새롭고 세밀하고 구체적인 사역을 했다. 요한은 시작 사역만 했을 뿐, 많은 새 사역은 모두 예수가 했다. 요한도 새로운 사역을 했지만 새 시대를 여는 자는 아니었다. 요한은 약속으로 태어난 자이고 그의 이름 역시 사자가 지어 준 것이다. 당시에 누군가 그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를 따라 사가랴라고 하자고 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라고 하였다. 그것도 성령이 지시한 것이다. 그러면 요한은 왜 하나님이라 불리지 않았겠느냐? 예수의 이름도 성령이 지시한 것이다. 예수는 성령으로 태어났고 성령이 약속한 자이다. 그는 하나님이고, 그리스도이며, 인자이다. 요한도 매우 큰 사역을 했는데 어째서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않았겠느냐? 예수의 사역과 요한의 사역이 어떤 차이가 있겠느냐? 단순히 요한은 예수를 위해 길을 닦는 자였기 때문이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그렇게 정해 놓았기 때문이겠느냐?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라고 외치며 천국의 복음을 전했지만, 그의 사역은 시작일 뿐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다. 반면 예수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낡은 시대를 끝냈으며 구약 율법도 완전케 했다. 그는 요한보다 더 큰 사역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속량하는 사역을 했다. 요한은 길만 잘 닦아 놓았을 뿐이다. 비록 그도 큰 사역을 하고 많은 말을 했으며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의 사역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주는 데 그쳤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생명과 길 또는 더 깊은 진리를 얻지 못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도 못했다. 요한은 큰 선지자(엘리야)다. 그는 예수의 사역을 위해 장소를 준비하고 적합한 사람들을 예비하였으며, 은혜시대의 길을 여는 선봉장이었다. 정상인의 겉모습만 보고는 이런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 더구나 요한도 매우 큰 사역을 했을 뿐만 아니라 성령이 약속한 자이고, 성령이 그의 사역을 수호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한 사역을 통해 각자의 신분을 구별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의 겉모습으로는 본질을 구별할 수 없고, 사람 또한 무엇이 성령의 증거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한과 예수의 사역이 다르고 사역의 성질 또한 다르기 때문에 이런 것을 통해 그가 하나님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 예수는 시작, 후속, 종결, 성취의 이 몇 단계 사역을 했지만 요한은 시작하는 사역만 했다. 예수는 처음에 회개의 길을 말씀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그 후에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으며, 마지막에는 인류를 죄에서 속량함으로써 그의 전체 시대 사역을 완성했다. 예수도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전도하며 천국의 복음을 전했다. 이 점은 요한과 같다. 다른 점은 예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 사람들에게 은혜시대를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은혜시대에 사람들이 실행해야 하는 것과 가야 하는 길을 말씀해 주었고, 마지막에는 구속 사역을 완성했다. 요한은 이런 사역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의 사역을 한 것이며, 그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고,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대표한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1> 중에서

5. 사람은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 정상 인성의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가 성인(聖人)이기 때문에 양치질이나 세수를 하지 않아도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관념이 아니냐? 성경에는 그의 사역에 대해서만 기록되어 있고, 그의 인성 생활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정상 인성이 없었고 서른 살 이전에 정상 인성의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예수가 스물아홉 살에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했지만, 스물아홉 살 이전의 인성 생활을 부인할 수는 없다. 성경에 그 부분의 기록이 생략되어 있을 뿐이다. 그 기간의 생활은 신성으로 사역하는 단계가 아니라 정상 인성의 생활을 할 때이므로 기록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가 세례를 받기 전에는 성령이 직접적으로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분을 이행해야 하는 날까지 정상인의 생활을 유지했을 뿐이다. 그가 비록 성육신 하나님이었다고 해도 정상 인성이 성숙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생명이 성장하는 데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기에 성경에는 이 성숙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예수가 세례를 받기 전에는 은밀한 단계였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도 않았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후에 행한 모든 사역이야말로 인류에 대한 속량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 자비와 긍휼이 가득한 사역이다. 이 사역의 시작이 바로 은혜시대의 시작이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 은혜시대 사람들이 은혜시대의 길을 가고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었으며 모든 것을 이루었다. 이것이 비록 사람이 기록한 것이기는 하지만 모두 사실이다. 어떤 일에 작은 오차는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일’은 완전히 사실이다. 다만 사람이 기록한 것에 오차가 있을 따름이다. “예수님이 평범한 정상 인성을 가지셨는데 어떻게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실 수 있었나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예수가 40일간 시험을 받은 것은 이적과 기사이고 정상인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40일간 시험받은 것은 성령의 역사인데, 그에게 초자연적인 것이 조금도 없을 수 있겠느냐? 예수가 이적과 기사를 나타냈다고 해서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인간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성령이 그처럼 평범한 사람에게 역사했기 때문에 그가 이적을 나타내고 더 큰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가 직분을 이행하기 전, 성경의 표현대로 영이 그의 몸에 내려오기 전에 예수는 정상적인 사람이었고, 초자연적인 것이 전혀 없었다. 성령이 그의 몸에 임했을 때부터, 즉 그가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후로는 그에게서 일어나는 일마다 초자연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에는 정상 인성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어 성육신 하나님께 인성이 없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물론 하나님이 땅에 왔으므로 그가 행하는 일들과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초자연적이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도 모두 초자연적인 것이다. 예수가 행한 것과 말한 것은 사람이 알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것을 땅으로 가져왔는데 초자연적이지 않을 수 있겠느냐? 천국의 비밀을 땅으로 가져왔으니 사람이 깨달을 수도 없고 측량할 수도 없을 만큼 기묘하고 지혜롭다. 이것이 모두 초자연적이지 않으냐? 하지만 너는 아무리 초자연적인 것도 모두 정상 인성에서 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인성이 있다. 인성이 없으면 성육신이 아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1> 중에서

6. 하나님의 영이 육신으로 사역할 때도 원칙이 있다. 그는 반드시 정상 인성을 갖춘 전제하에서 아버지를 위해 사역을 담당할 수 있고 아버지가 맡긴 일을 감당할 수 있다. 그때가 되어서야 사역하기 시작한다. 예수는 유년 시절에 오랜 옛날의 일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 것은 회당에 있는 선생들에게 물어봐서 알게 되었다. 만약 예수가 말을 떼기 시작하자마자 사역하기 시작했다면 착오가 생기지 않았겠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일을 잘못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그는 사역할 수 있게 된 뒤에야 사역을 시작한 것이다. 사역을 완전히 감당할 수 없을 때에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 예수가 스물아홉 살이 되었을 때는 상당히 성숙해진 때이며, 그의 인성은 사역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때였다. 그제야 30년간 은밀히 거했던 성령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이 본격적으로 그에게서 역사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요한이 예수를 위해 길을 닦으며 7년 동안 예비해 놓은 후였다. 요한은 자신의 사역을 마치자 투옥되었고 모든 짐은 예수가 짊어지게 되었다. 만약 예수가 스물한두 살에 그 사역을 했다면, 인성이 너무 부족한 데다가 막 청년기에 들어선 때라 모르는 일이 많아 사역의 방향을 주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요한이 일정 기간 사역을 한 후에 예수가 사역을 했다. 예수가 사역할 때는 이미 중년이었고,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충분히 감당할 만한 정상 인성을 가지고 있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1> 중에서

7. 성육신 하나님이 육신으로 사역하는 데는 많은 원칙이 있으며,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그런데 사람은 늘 자기 관념을 가지고 대조하거나 하나님께 지나친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식이 순전히 관념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성육신 하나님이 육신으로 사역하는 원칙은 바뀌지 않는다. 그는 말씀이 육신 되었지만 육신을 벗어나서 사역할 수 없고, 육신의 정상 인성으로 사역하지 않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성육신한 의의가 물거품이 되고 더욱이 ‘말씀’이 육신 된 의의가 전혀 없게 된다. 더구나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오직 하늘의 아버지(영)만 알 뿐, 그 외에는 육신 본인조차 모르고 하늘의 사자도 모른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은 더없이 정상적이 되었으며, 또한 확실히 ‘진리’가 육신 되고 ‘말씀’이 육신 되었음을 더 잘 나타낸다. 그 육신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을 뜻한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1> 중에서

8.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왜 시대를 여는 사역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친히 하셔야 합니까? 피조물은 대신할 수 없단 말입니까?” 너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새 시대를 열기 위함이다. 물론 새 시대를 여는 동시에 옛 시대도 끝낸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다. 그가 직접 사역을 전개했으므로 옛 시대를 끝내는 것도 그가 직접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탄을 물리치고 세상을 이긴 증거(證据)다.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사역을 할 때마다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새 사역이 시작되지 않으면 당연히 옛 사역도 끝나지 않는다. 옛 사역이 끝나지 않았다면 사탄과 싸우는 사역이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오로지 하나님이 와서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사역을 해야만 사람이 사탄의 권세에서 철저히 벗어날 수 있고, 사람에게 새로운 삶과 새로운 시작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영원히 낡은 시대에서 살게 되고 영원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다. 하나님이 시대를 한 번 이끌어 주면 사람은 어느 정도 해방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이 이기면 그를 따르는 사람도 이기게 된다. 시대를 끝내는 일을 창조된 인류에게 맡긴다면 사람이나 사탄에게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배반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하는 사역이 사탄에게 빌미를 주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이 친히 열어 놓은 시대에서 순종하고 따라야만 사탄이 완전히 굴복할 수 있다. 이것이 피조물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가 다른 일은 할 필요 없이 오직 따르고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각자 본분을 지키고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하면서 이를 대신할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피조물의 사역에 개입하지도 않는다. 또 사람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의 사역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이래야 순종하는 것이고, 사탄을 물리치는 증거가 된다. 하나님이 시대를 열고 나면 더 이상 친히 인간 세상에 와서 사역하지 않는다. 그제야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새 시대로 들어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하고, 피조물의 사명을 완수하게 된다. 이것은 사역의 원칙이므로 누구도 어겨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해야만 공정하고 합리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직접 한다. 그는 사역을 전개하는 분이자 사역을 끝내는 분이며, 사역을 계획하는 분이자 사역을 경영하는 분이며 더욱이 사역을 이루는 분이다. 성경에 ‘나는 처음과 나중이라. 나는 씨를 뿌리는 자이자 곡식을 거두는 자이니라.’라고 한 것과 같다. 그의 경영과 관계된 이 모든 사역은 그가 직접 행한다. 그는 6천년 경륜의 주재자이며, 누구도 그의 사역을 대신하거나 그의 사역을 끝낼 수 없다. 그가 모든 것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창조한 이상 온 세상이 그의 빛 속에서 살도록 인도할 것이고, 반드시 전체 시대를 끝내어 자신의 모든 계획을 이룰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1> 중에서

9. 예수가 유대에서 사역할 당시에는 공개적이었지만 지금 너희들 가운데서 사역하고 말씀하는 것은 은밀한 것이어서 이방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너희들 가운데서 하는 사역은 폐쇄적인 것이다. 이 말씀, 이 형벌과 심판은 너희만 알고 있을 뿐 다른 이들은 모른다. 이 사역은 너희들 가운데서 하고 있는 것으로, 너희에게만 열려 있고 이방인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이는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형벌을 받아 곧 온전케 되어 가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이 사역은 참으로 은밀한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이 그들에게는 은밀히 감추어져 있지만, 이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공개하고 나타내고 보여 준 것이지만, 이것은 그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 것이지 그 외의 이방인들에게는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사역이 철저히 폐쇄적인 것은 그들이 모르게 하기 위함이다. 그들이 알게 된다면 정죄하고 핍박만 할 것이다.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큰 붉은 용의 국가, 즉 이 가장 낙후된 곳에서 사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역을 공개한다면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이 사역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 사역을 공개적으로 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느냐? 더 큰 위험을 감당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 사역을 은밀하게 하지 않고 예수 때처럼 기세 높게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다면, 벌써 마귀에게 ‘사로잡히지’ 않았겠느냐? 그것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용납할 수 있겠느냐? 오늘날 교회당에 들어가서 설교하고 가르쳤다면 나는 벌써 온몸이 으스러지지 않았겠느냐? 그러면 사역을 어떻게 전개해 나갈 수 있겠느냐? 지금 이적과 기사를 공개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것은 은밀하게 진행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볼 수 없고, 알 수 없고, 발견할 수도 없다. 이번 단계에서도 은혜시대의 예수처럼 사역한다면 이렇게 안정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은밀하게 사역하는 것은 너희에게도 유익하고 모든 사역에도 유익하다.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사역, 즉 은밀한 사역이 끝날 때, 이 사역이 폭발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중국에 이기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중국에서 성육신했으며 그의 사역이 이미 끝났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중국이 오랫동안 쇠락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은 것이 바로 하나님이 중국에서 친히 사역하여 이기는 자들을 온전케 했기 때문임을 크게 깨닫게 될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2> 중에서

10. 성육신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친히 사역하는 동안 자신을 따르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나타난다. 그가 성육신한 것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형상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 단계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반드시 그가 친히 해야 하기 때문에 그는 육신을 입고 사역해야 한다. 그는 사역이 끝날 때 인간 세상을 떠난다. 앞으로의 사역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인간 세상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만인에게 나타내는 것은 그가 두 차례 성육신할 때 입은 육신의 형상이 아니라 그의 공의로운 성품과 모든 행사다. 하나님의 형상은 성육신의 형상으로 대체할 수 없으며 오직 그의 성품으로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입은 육신의 형상은 일부 한정된 사람들, 즉 육신으로 사역할 때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낸다. 그러므로 지금의 사역은 은밀한 사역이다. 이는 예수가 사역할 때 유대인들에게만 나타났을 뿐 유대인 외에는 그 어떤 족속에게도 공개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과 같다. 그래서 예수는 사역을 완성한 후 인간 세상에 머물지 않고 곧 떠났고, 그 후에도 예수의 형상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직접 역사했다.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이 모두 끝나면 그는 인간 세상을 떠나며, 그 후에는 육신으로 있었던 동안에 했던 것과 비슷한 사역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 후의 사역은 모두 성령이 직접 하는 것이다. 그 기간에 사람은 그가 육신에 있었을 때의 형상을 보기가 어렵다. 그는 사람에게 아예 나타나지 않고 영원히 은밀하게 숨는다.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은 기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특정 시대, 특정 시간, 특정 국가, 특정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한다. 그 사역은 성육신한 기간의 사역만을 대표하는 것으로 시대성이 있으며, 하나님의 영이 하는 모든 사역이 아닌 하나님의 영이 하나의 시대에 하는 사역만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형상이 만민에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인에게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모든 성품이지 하나님의 두 차례 성육신의 형상이 아니다. 또 하나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두 차례의 형상이 합해져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하고 나면 반드시 땅을 떠나야 한다. 성육신 하나님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하러 온 것일 뿐 그의 형상을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두 차례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이 성육신한 의의를 완전케 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본 적 없는 다른 어떤 족속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2> 중에서

11. 두 차례 성육신의 사역이 끝나면 그는 이방의 각 족속에게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만인에게 그의 형상을 보게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성품을 나타내고 그것으로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드러냄으로써 옛 시대 전체를 끝낼 것이다. 그가 육신으로 하는 사역이 그리 큰 범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예수는 유대에서만 사역했고 오늘날에는 너희들 가운데서만 하는 것처럼) 육신의 사역이 범위가 있고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통해 영세에서의 사역을 하거나 이방의 만민에게 나타나는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정상적인 육신의 형상을 통해 짧게 사역할 뿐이다. 육신으로 하는 사역은 범위가 제한적이고(유대에서만 하거나 너희들 가운데서만 하는 것처럼) 그 범위 안에서 행한 사역을 통해 다시 사역 영역을 확대한다. 물론 확장하는 사역은 그의 영이 직접 역사한다. 그때는 그가 입은 육신이 하는 사역이 아니다. 육신으로 하는 사역은 범위가 있으며 전 우주 아래의 구석구석을 두루 다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의 영은 육신으로 한 사역을 통해 그 후의 사역을 전개한다. 그러므로 육신으로 하는 사역은 유한한 범위에서 하는 시작 사역이며, 그 후에는 그의 영이 그 사역을 이어 나가 범위를 확대해 사역한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2> 중에서

12.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하는 사역은 단지 시대를 이끌어 가고 새 시대를 열고 또 옛 시대를 끝내는 것이다. 땅에서 사람의 인생 여정을 걸으려고 온 것도 아니고, 땅에서 인간 세상의 온갖 고초를 몸소 체험하려고 온 것도 아니며, 친히 어떤 사람을 온전케 하거나 어떤 사람의 성장 과정을 직접 보려고 온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의 사역이 아니다. 그의 사역은 단지 새 시대를 시작하고 옛 시대를 끝내는 것일 뿐이다. 바로 그 자신이 시대를 시작하고 시대를 끝내는 것이며, 친히 사역하는 방식으로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다. 친히 사역할 때마다 직접 ‘전장’에 나가는 것과 같다. 우선 육신으로 세상을 이기고 사탄을 이겨 모든 영광을 얻고, 2천 년 전체 사역의 ‘서막’을 연다. 그리하여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합당한 길을 열어 주며 평안하고 기쁜 나날을 보내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땅에서 오랫동안 생활할 수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이며 어쨌든 사람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정상인의 일생을 살 수 없다. 즉, 지극히 평범한 정상인처럼 세상에 상주하지는 않는다. 그는 정상인이 갖추고 있는 정상 인성 중 아주 작은 부분만으로 인성의 생활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어떻게 땅에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겠느냐? 그러면 치욕이 되지 않겠느냐? 그가 정상 인성을 가진 것은 단지 정상적으로 사역하기 위한 것이지 정상인처럼 가정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가 정상적인 이성과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고 정상적인 육신으로 먹고 입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정상 인성이 있음이 충분히 증명된다. 그가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으로 그가 정상 인성을 가졌음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그는 단지 사람이 자신의 말씀을 보고 깨닫게 한다. 즉, 육신이 하는 사역을 사람들에게 보게 할 뿐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사람이 그의 육신을 어떻게 대하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이 끝까지 순종하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그가 하는 모든 사역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는 육신으로 사역을 할 뿐이다. 일부러 사람들에게 그의 육신의 위대함과 거룩함을 높이 받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역하는 지혜와 모든 권능을 보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인성이 아주 높다고 해도 아무 선전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한다. 너희는 하나님이 성육신했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사역만 할 뿐, 어째서 지금까지 그의 정상 인성을 널리 알리거나 증거하지 않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너희는 성육신 하나님에게서 그가 지닌 신성의 속성(원문: 所是)밖에 볼 수 없다. 이것은 그가 지금까지 그의 인성의 속성을 선전하며 사람들에게 본받으라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을 이끌 때 자신의 속성을 소개한다. 이는 다른 사람을 이끌기 위해 탄복과 복종을 이끌어 내려는 것에 목적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저 자신이 행하는 사역(사람이 할 수 없는 사역)만으로도 사람을 정복한다. 그는 사람을 탄복하게 하거나 숭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이 경외심을 느끼거나 그를 측량할 수 없다고 느끼게 할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탄복시킬 필요가 없다. 단지 네가 그의 성품을 보고 그를 경외할 수 있으면 된다. 하나님이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며 사람이 대신할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다. 하나님만이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고, 하나님만이 새 시대를 열어 사람을 새로운 삶으로 인도할 수 있다. 그가 하는 사역은 사람이 새로운 삶을 살게 하고 새 시대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 외의 사역은 인성이 정상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탄복하게 하는 사람에게 맡겨 행하게 한다. 그래서 그는 은혜시대에 2천 년의 사역을 성육신한 33년 중 3년 반 만에 끝냈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할 때, 언제나 2천 년의 사역 또는 전체 시대의 사역을 몇 년이라는 가장 짧은 시간 내에 끝낸다. 시간을 끌지 않고 날짜를 연장하지도 않으며 오랜 기간의 사역을 가장 짧은 몇 년 내로 단축해서 완성한다. 그가 몸소 사역하는 것은 새로운 길을 열고 새 시대를 이끌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2> 중에서

13.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과 다르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할 때는 그저 그의 직분을 이행할 뿐 그의 직분과 무관한 일은 거의 간섭하지 않으며, 심지어 묻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하며, 특히 사람이 해야 할 사역에는 더욱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는 그의 현시대와 그의 직분에 관련된 사역만 할 뿐, 그 외의 일은 그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는 사람으로서의 상식을 더 많이 갖추지 않고, 사교성을 키우지도 않으며, 기타 사람이 알아야 할 것에 대해서도 갖추지 않는다. 그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것들에 아무 관심도 없고 직분 내에 있는 사역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입장에서는 성육신 하나님께 ‘부족한 것’이 너무 많고, 심지어 사람이 갖추어야 할 많은 것에 아무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생활 상식이나 사람으로서의 처세 원칙 같은 것들은 그와 거의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너는 성육신 하나님에게서 비정상적인 면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그는 인성을 통해 정상적인 인성 생활과 정상적인 이성을 유지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추었지만, 그 외의 것들은 갖추지 않았다. 그 외의 것들은 사람(피조물)만이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은 그저 자신의 직분을 이행할 뿐이다. 그는 어느 한 사람이나 한 지역을 겨냥해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시대와 우주 전체를 상대로 사역한다. 이것이 그가 사역하는 방향이자 원칙이며, 아무도 바꿀 수 없고 사람이 전혀 관여할 수도 없다. …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오직 그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땅에서 사역하는 시간은 짧다. 그가 땅에 온 목적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일부러 그의 육신이 훌륭한 교회 리더로 육성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온 자체가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하는 사역을 몰라 그에게 강요할 뿐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것이지 하나님의 영이 어떤 육신을 육성하여 그 육신이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 자신은 육성된 것이 아니라 ‘길’, ‘말씀’이 ‘육신’ 되어 지금 본격적으로 너희들 가운데서 사역하고 있는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3> 중에서

14.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다만 시대를 이끌고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너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는 사람의 기능과 크게 다르므로 양자를 같이 논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사역을 하려면 오랜 시간 훈련받고 온전케 되어야만 쓰임 받을 수 있다. 또 매우 훌륭한 인성을 갖추고 정상 인성의 이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처세의 원칙과 법칙을 많이 알고 사람의 지혜와 윤리 지식도 배워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는 사람을 대표하거나 사람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의 속성(원문: 所是)을 나타내고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직접적으로 하기 때문이다(물론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때에 하며, 직분을 이행해야 할 때에 사역하기 시작한다.). 그는 사람의 생활이나 사람의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의 인성 안에는 이런 것들이 없다(이런 것들을 갖추지 않아도 그의 사역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그는 직분을 이행해야 할 때에 자신의 직분을 이행할 뿐이고, 어떤 지위에 있든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한다. 사람이 그를 어떻게 이해하든,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그의 사역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예수가 사역할 때도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사역만을 해 나갔다. 그러한 것은 그가 해야 할 사역에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는 처음에 사람들에게 자기 신분을 밝히거나 자랑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따르라고만 했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낮춘 것이자 육신으로 와서 사역하는 방식이다. 사람의 육안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사람이 알아본다 해도 그의 사역을 도울 수 없고, 게다가 그가 성육신한 목적은 사람에게 그의 육신을 알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 그의 직분을 이행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가 해야 할 사역이 다 끝난 뒤면 사람들이 그의 신분과 지위를 저절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성육신 하나님은 무언가를 크게 알리지도 않고 묵묵히 지낸다. 그는 사람들이 어떠하든, 그를 따르는 모습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직분을 이행하며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한다. 그의 사역은 아무도 가로막을 수 없으므로, 그가 사역을 끝낼 때가 되면, 사역은 반드시 끝나고 종결된다. 이는 아무도 결정할 수 없다. 사람들은 그가 사역을 끝내고 떠난 뒤에야 그의 사역을 알게 되지만 그래도 완전히 알지는 못한다. 그가 사역할 때의 뜻을 사람들이 완전히 알 수 있으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성육신 하나님 시대의 사역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한 부분은 성육신 하나님이 친히 사역하고 말씀하는 것이다. 육신의 직분이 끝나면 다른 한 부분은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에게 맡겨 하는 것이다. 이때는 사람이 자신의 기능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미 길을 열어 주었으므로 사람 스스로 가야 한다. 다시 말해, 성육신 하나님이 사역 중 일부를 한 뒤에 성령과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그 사역을 이어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단계 사역에서 성육신 하나님이 주로 하는 사역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의의가 무엇이며, 그가 해야 할 사역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을 그대로 하나님께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람의 실수이자 사람의 관념이며, 더욱이 사람의 패역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3> 중에서

15.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사람에게 자신의 육신을 알게 하기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이 입은 육신과 사람의 육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분하도록 하기 위함도 아니며, 사람의 분별력을 훈련시키기 위함도 아니다. 또한 사람들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경배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큰 영광을 받으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이 성육신한 본래 의도가 아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사람을 정죄하거나 일부러 사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사람과 대립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본래 의도가 아니다. 그가 두 차례 성육신한 것은 모두 불가피한 일이다. 사람이 상상하는 것과 달리, 더 큰 사역과 더 큰 경영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사역에 필요한 것이며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일부러 땅에서 돌아다니려고 온 것이 아니라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가 이렇게 큰 중임을 짊어지고 큰 위험을 무릅쓰면서 이 사역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의 성육신은 부득이한 일이었고 모두 특별한 의의가 있다. 그저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시야를 넓혀 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는 절대로 쉽게 인간 세상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가 땅에 온 것은 그의 경영과 그의 더 큰 사역을 위한 것이고,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다. 또한 그는 시대를 대변하고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 온 것이다. 그것도 육신을 입고 사탄을 물리치기 위해 땅에 왔으며, 더욱이 인류 전체의 삶을 인도하기 위해서 땅에 왔다. 이 모든 것은 그의 경영과 전 우주 사역에 관련된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신의 육신을 알게 하고 시야를 넓혀 주기 위해 성육신했다면 어째서 세계를 일주하지 않겠느냐?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 아니냐?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합당한 곳을 택해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시작했다. 이 육신은 너무도 큰 의의가 있다. 그는 시대 전체를 대변하고 또 시대 전체의 사역을 전개한다. 그는 옛 시대를 끝내고 새 시대를 열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과 관계되는 큰일이고, 모두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하는 사역의 의의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3> 중에서

16. 6천년 경륜을 통해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나타냈다. 은혜시대에만 나타낸 것이 아니고, 율법시대에만 나타낸 것도 아니며, 말세에만 나타낸 것은 더더욱 아니다. 말세에 하는 사역은 심판, 진노, 형벌을 대변한다. 말세에 하는 사역은 율법시대의 사역을 대체할 수 없고, 은혜시대의 사역을 대체할 수도 없다. 하지만 세 단계의 사역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로 이루어지며 한 분의 하나님이 행한 것이다. 물론 시대를 나누어서 행한 사역이다. 말세에 하는 사역은 마무리 사역이고, 율법시대의 사역은 시작 사역이며, 은혜시대의 사역은 구속 사역이다. 6천년 경륜이라는 이 사역의 이상(異象)을 아무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아무도 알지 못해 줄곧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말세에는 말씀 사역만으로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를 열었지만 이 시대가 모든 시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말세는 그저 말세이고 하나님나라시대일 뿐, 은혜시대나 율법시대를 대표하지 않는다. 다만 말세에 6천년 경륜의 모든 사역을 너희에게 보여 주었는데, 이는 비밀을 연 것이다. 이런 비밀은 그 누구도 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성경의 본질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성경을 잘 이해해도 글귀를 아는 데 그칠 뿐이다. 성경을 보고 진리를 조금 깨닫거나 글귀를 조금 해석하고 유명한 장절을 파고들 수는 있겠지만 그 글귀 속에 담긴 뜻은 영원히 풀 수 없다. 사람은 여호와나 예수가 사역한 현장을 본 것이 아니라 죽은 글귀만 보았을 뿐이고, 또 그런 사역의 비밀을 풀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6천년 경륜의 비밀은 가장 신비롭고 은밀한 것이며, 사람이 측량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누구도 직접적으로 알 수 없다. 그가 직접 사람들에게 해석해 주고 풀어 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에게는 영원히 ‘수수께끼’요, 영원히 닫혀 있는 비밀일 것이다. 종교계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너희들 역시 오늘날 이렇게 알려 주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17. 말세 사역은 3단계 사역 중 마지막 단계 사역이자 새 시대의 사역으로, 전체 경영 사역을 뜻하지는 않는다. 6천년 경륜은 3단계 사역으로 나뉘며, 어느 단계든 한 부분만 의미할 뿐, 세 시대의 사역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변할 수는 없다. 또 그가 율법시대의 사역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율법 아래의 하나님인 것은 아니다. 여호와는 사람에게 율법을 제정해 주고 계명을 반포했으며 사람에게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게 했다. 그가 한 사역은 율법시대만 대변한다. 그가 그런 사역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율법을 지키게만 하는 하나님, 성전에만 계시는 하나님, 제단 앞에만 있는 하나님인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율법 아래의 사역은 한 시대밖에 대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의 사역만 한다면, 사람들이 하나님은 성전 안에만 거하는 하나님이니 하나님을 섬기려면 반드시 제사장의 옷을 입고 성전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하나님을 규정할 것이다. 만약 은혜시대의 사역을 하지 않고 율법시대가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긍휼과 자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율법시대의 사역을 하지 않고 은혜시대의 사역만 했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속량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주기만 하는 분이고, 거룩하고 무고한 분이며,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다는 것만 알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외에 다른 것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시대는 하나님의 성품 중 일부만을 대변한다. 율법시대에 대표적인 성품이 있고, 은혜시대에 대표적인 성품이 있으며, 이번 단계에는 또 다른 대표적인 성품이 있는데, 이 3단계 사역을 종합해야만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은 3단계 사역을 알아야 전면적으로 알게 된다. 3단계 사역 중에 어느 단계도 빠져서는 안 된다. 3단계 사역에 대해 알아야만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율법시대의 사역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을 단지 율법 아래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는 없고, 구속 사역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영원히 인류를 속량한다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사람이 규정한 것이다. 은혜시대가 끝났기 때문에 너는 하나님이 십자가에만 속하고,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번 단계에서 하나님은 주로 말씀 사역을 한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사람을 긍휼히 여긴 적이 없고 형벌과 심판만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말세의 사역에서는 여호와가 했던 사역, 예수가 했던 사역, 사람이 알지 못했던 모든 비밀을 사람에게 열어 주고, 나아가 인류의 종착지와 결말을 드러내며, 인류 가운데서의 모든 구원 사역을 끝낸다. 말세의 사역은 마무리하는 사역으로, 반드시 사람이 모르는 비밀을 다 열어서 분명히 깨닫고 완전히 알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각기 부류대로 나뉠 수 있다. 사람들은 6천년 경륜이 끝난 뒤에야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알게 된다. 그것은 그의 경영이 끝났기 때문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18. 오늘날 사람들에 대한 요구는 예전과 다르며, 율법시대 사람들에게 했던 요구와는 더더욱 다르다.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율법 아래 사람들에게 어떻게 요구했느냐? 그저 안식일을 지키고 여호와의 율법을 지킬 수 있으면 충분했다. 안식일이 되면 아무도 일하지 않았고, 아무도 여호와의 율법을 어길 수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안식일이 되어도 평소처럼 일한다. 예배를 해야 하면 예배하고, 기도를 해야 하면 기도하며 조금도 통제받지 않는다. 은혜시대 사람들은 세례받고, 금식하고,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고, 머리에 수건을 쓰고, 발을 씻어야 했다. 지금은 이런 규례들을 모두 폐하였고 사람에게 더 높은 요구를 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역이 끊임없이 깊어지고 사람의 진입도 끊임없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예수가 안수기도를 했지만 지금은 말씀을 다 했는데 안수를 해서 뭐하겠느냐? 말씀이면 곧바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때는 안수로 사람을 축복하고 사람의 병도 고칠 수 있었다. 그때는 성령이 그렇게 했지만 지금은 성령이 그렇게 하지 않고 말씀으로 사역의 성과를 거둔다. 너희에게 모든 말씀을 분명하게 알려 주었으니 그대로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말씀이 바로 그의 뜻이고 그가 하려는 사역이다. 그가 한 말씀을 통해 그의 뜻을 알고 너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수 있으므로 안수받을 필요 없이 곧바로 실천하면 된다. 어떤 이는 “안수를 해 주십시오! 당신에게 받을 분깃이 있도록 안수로 축복을 해 주십시오!”라고 하지만, 이는 과거에 했던 낡은 실행 방법이다.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지금은 모두 취소되었다. 성령은 무턱대고 역사하거나 규례에 맞추어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역사한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새 시대에는 필연적으로 새 사역이 있는 것이다. 모든 단계의 사역이 다 그렇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은 지금까지 중복된 적이 없다. 은혜시대에는 예수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안수기도를 하고, 사람에게 축복하는 사역을 적지 않게 행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또 그렇게 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때는 성령이 그렇게 했다. 은혜시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충분한 은혜를 누릴 수 있었고, 어떤 대가를 치를 필요도 없이 믿기만 하면 은혜를 얻을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은총을 베풀었던 것이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고 하나님의 사역이 발전하여 형벌과 심판으로 사람의 패역과 사람 안에 있는 깨끗하지 못한 것들을 없앤다. 그때는 속량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했다. 사람들에게 충분한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베풀어 주어야만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고 은혜를 통해 죄를 사해 줄 수 있었다. 이번 단계는 형벌과 심판, 말씀의 채찍질, 말씀의 징계와 폭로를 통해 사람 안에 있는 불의한 것들을 드러낸 뒤 구원받게 하는 것이며, 속량보다 더 깊어진 사역이다. 은혜시대의 은혜는 이미 사람들이 충분히 누렸고 이미 체험했으므로 더 이상 은혜를 누리게 하지 않는다. 그런 사역은 시대에 뒤떨어졌으므로 이제는 하지 않는다. 지금은 말씀의 심판으로 사람을 구원한다. 사람이 심판과 형벌, 연단을 받아 성품 변화가 있는 것은 모두 내가 한 이런 말 때문이 아니냐? 모든 단계의 사역은 전 인류의 발전 상황과 시대에 따라 하는 것이고, 모두 의미 있는 사역이자 최종적인 구원을 위한 것이다. 또 훗날 인류가 아름다운 종착지로 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며, 마지막에 사람들을 각기 부류대로 나누기 위한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19. 마지막 사역은 말씀만 하는 것이다. 사람은 말씀을 통해 크게 변화할 수 있다. 지금 사람들이 이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얻은 변화는 은혜시대 사람들이 이적과 기사를 통해 얻은 변화보다 훨씬 크다. 은혜시대에 안수기도하면 귀신은 사람 몸에서 나갔지만 사람 안의 타락한 성품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은 병 고침을 받고,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사람 안에 존재하는 사탄의 타락 성품을 없애는 사역은 행하지 않아 그저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죄 사함을 받았을 뿐, 죄짓는 본성은 그대로 남아 사람 안에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사람 안에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을 통해 죄 사함을 받은 것이었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속죄제로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사람이 죄를 짓지 않고 죄성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죄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이런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없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탄의 타락한 옛 성품 안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람을 사탄의 타락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야 한다. 죄성을 완전히 벗겨 버리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게 하여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과 생명의 말씀, 성품이 변화되는 과정을 알게 해야 하고, 그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함으로써 점차적으로 성품의 변화를 받고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한다. 아울러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하고, 사탄의 타락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해야 하며,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죄에서 완전히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예수가 사역할 때,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막연하고 모호하게만 알고 있었다. 줄곧 그를 다윗의 자손으로 여기고, 대선지자이자 사람의 죄를 속량하는 인자한 주님이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그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았고, 소경도 앞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죽은 자도 부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깊이 뿌리박힌 사탄의 타락 성품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것을 어떻게 벗어 버려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사람은 많은 은혜를 받았다. 육체의 평안과 즐거움, 한 사람이 주를 믿으면 온 가족이 복을 받고, 병이 낫게 되는 것과 같은 많은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 외에도 선행을 하고 경건한 겉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신자라고 불릴 자격이 있고 그런 신자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생전에 생명의 말씀을 전혀 알지 못했고, 그저 죄를 짓고 자복하기만을 반복할 뿐 성품이 변화되는 길은 없었다. 은혜시대의 사람들은 그런 상태였다. 사람이 완전히 구원을 얻었느냐?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그 단계 사역이 끝난 후에 또 심판과 형벌의 사역이 있게 되었다. 이 단계에는 말씀을 통해 사람을 정결케 하고 사람에게 실행할 길을 준다. 이 단계에서도 귀신을 쫓아낸다면 아무런 성과도, 의미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죄성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그저 죄 사함을 받은 기초에만 머물러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속죄제로 인해 이미 죄 사함을 받았다. 십자가 사역이 끝났고 하나님이 사탄을 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안에는 타락한 성품이 아직 존재하며 사람이 여전히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류를 얻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번 사역은 말씀으로 사람의 타락 성품을 들추어내어 적합한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 단계 사역은 이전 단계의 사역보다 더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성과도 더 크다. 지금은 말씀으로 직접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해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새롭게 하는 더 철저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성육신으로 하나님이 성육신한 의의를 완전케 하였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륜을 확실히 완성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20.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할 때 직접 영의 방식과 영의 신분으로 구원하지 않는다.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으로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 하나님이 창조된 사람의 외형을 입지 않으면 사람은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것처럼 사람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창조된 사람이 되어야만, 즉 그의 ‘말씀’을 그가 입으려는 육신에 채워야만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말씀’을 직접 적용할 수 있다. 그래야만 사람이 직접 그의 말씀을 듣고 볼 수 있으며 나아가 그의 말씀을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사람은 완전히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다면 육에 속한 사람은 그 누구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죽게 될 것이고, 하나님과 접촉할 수 없기 때문에 사탄에게 철저히 사로잡힐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21. 첫 번째 성육신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했다. 예수의 육신으로 사람을 속량해 온 것이다. 즉,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해 낸 것이다. 하지만 사람 안에는 사탄의 타락 성품이 계속 존재했다. 두 번째 성육신은 더 이상 속죄제가 되지 않고, 죄에서 속량해 온 사람들을 철저히 구원한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 완전히 정결케 되고, 성품이 변화됨으로써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히 성결해지는 것이다. 율법시대가 끝나고 은혜시대가 시작되면서 하나님은 구원 사역을 시작했다. 말세에 하나님은 인류의 패역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사역을 하여 인류를 완전히 얻고 정결케 한 뒤에야 구원 사역을 끝내고 안식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3단계 사역 중 두 차례만 성육신으로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한다. 3단계 사역 중 한 단계는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는 사역이고, 나머지 두 단계는 구원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해야만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 있고 인간 세상의 고통을 체험할 수 있으며 정상적인 육신으로 살 수 있다. 그래야만 창조된 사람에게 필요한 실제적인 말씀을 공급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인해 온전히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지 사람이 하늘에 간구하여 직접 얻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모두 육에 속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을 볼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영에 접근할 수 없다. 그러기에 사람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밖에는 접할 수 없다. 이 육신을 통해야만 사람은 모든 말씀과 진리를 깨닫고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두 번째 성육신은 사람의 죄를 충분히 벗겨 버릴 수 있고 사람을 완전히 정결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성육신으로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모든 사역을 끝내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의의를 완전케 하였다. 이로써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이 전부 끝나게 되었다. 그는 두 번째의 성육신 후에 또다시 세 번째로 성육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의 모든 경영이 끝났으며, 말세의 성육신을 통해 이미 택한 사람들을 완전히 얻었고, 마지막 때의 사람들이 모두 각기 부류대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구원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고, 육신으로 되돌아와 사역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22. 말세의 사역에서 말씀의 위력은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위력을 넘어섰으며, 말씀의 권능은 이적과 기사의 권능을 능가하였다. 말씀으로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모든 타락 성품을 다 들추어냈다. 너 스스로 발견하지 못해도 말씀으로 들추어내면 너는 자연스럽게 발견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진심으로 탄복하게 된다. 이것이 말씀의 권능이 아니겠느냐? 이는 모두 오늘날의 말씀 사역으로 얻은 성과다. 그러므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으로 사람을 죄에서 완전히 구원할 수 없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을 완전히 온전케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육은 여전히 사탄에게 속하며, 사람 속에는 여전히 사탄의 타락 성품이 남아 있다. 즉, 정결케 되지 못한 사람은 계속 죄에 속하고 더러움에 속한다. 오직 사람은 말씀으로 정결케 되어야만 하나님께 얻어지고 성결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고 사람을 속량해 온 것은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하나님께 돌려준 것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아직 하나님께 정결케 되고 변화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타락한 사람이다. 사람의 속에는 여전히 더러움이 남아 있고 대적과 거역이 남아 있다. 다만 속량받아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어 계속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할 수 있다. 사람이 속량받기 전에 이미 사탄의 많은 독소가 사람 안에 심어져 있었다. 사람은 수천 년 동안 사탄에 의해 타락해 속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므로 구속받은 것은 그저 속량받은 것일 뿐이다. 즉, 비싼 값을 치르고 사람을 사온 것이다. 하지만 사람 내면에 있는 독성은 제거되지 않았다. 이렇게 더러운 사람은 변화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님을 섬길 자격을 가질 수 있다. 심판하고 형벌하는 이번 단계의 사역으로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타락한 본질을 완전히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완전히 변화되어 정결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야만 사람에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주어진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말씀의 심판과 형벌, 연단으로 타락을 벗겨 내 정결케 하는 것이다. 이번 단계의 사역은 구원하는 사역이라기보다는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사실 이번 단계 사역은 정복 사역이자 두 번째 구원 사역이다. 사람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께 얻어지는데, 이는 말씀으로 연단하고 심판하고 들춰내며, 사람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 관념, 속셈 또는 개인적인 소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이 속량되어 죄 사함을 받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과오를 문제 삼지 않고 사람을 과오에 따라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사람이 육으로 살며 죄를 떨쳐 버리지 못하면 계속 죄를 짓고 사탄의 타락 성품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죄를 짓고 끊임없이 사함을 받는 사람의 삶이다. 많은 사람들은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복한다. 이렇다면 속죄제가 사람에게 영원히 유효할지라도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할 수 없다. 이는 구원 사역을 반만 완성하였을 뿐이다. 사람에게 아직도 타락한 성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자신이 모압의 후손임을 알게 되었을 때 원망하고 생명을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완전히 소극적으로 변했다. 이는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의 권세에 완전히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냐? 이것이 바로 사탄의 타락 성품이 아니냐? 네가 형벌받지 않았을 때는 누구보다 높이 손을 들었다. 심지어 예수보다도 더 높이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지기(知己)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죽을지언정 사탄에게 굴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탄을 내치겠습니다! 큰 붉은 용을 저버리겠습니다! 큰 붉은 용을 철저히 무너뜨리겠습니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겠습니다!” 누구보다 더 크게 외쳤지만 결국 형벌 시대가 오자 사람의 타락 성품은 또 드러났다. 모두 외치지도 않았고 의지도 사라졌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타락으로, 죄보다 더 깊고 사탄이 사람 안에 심어 놓은,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사람의 죄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에게 깊이 뿌리박혀 있는 본성을 사람은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말씀의 심판을 통해 성과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그때부터 차츰 변화될 수 있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23. 사람이 지금 도달한 것, 즉 지금 사람의 분량, 인식, 사랑, 충성심, 순종, 그리고 깨달음은 모두 말씀의 심판으로 얻은 결실이다. 네가 충성심을 가지고 지금까지 설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말씀을 통해 얻은 것이다. 사람은 지금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이 확실히 평범하지 않고, 그중 많은 것들이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며 비밀이자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순종하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 누구에게도 복종한 적이 없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어느새 완전히 승복하게 되어 더는 연구하지도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말씀 속에서 쓰러지고 말씀의 심판으로 엎드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에게 말씀한다면, 사람은 모두 그 ‘음성’ 앞에서 순종하게 될 것이다. 마치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빛 속에 엎드러진 것처럼 말씀으로 사람을 폭로하지 않아도 모두 엎드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계속 그렇게 한다면, 사람은 영원히 말씀의 심판으로 자신의 타락을 깨달아 구원받는 이 목적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해야만 모든 사람에게 직접 말씀을 전해 주어 귀 있는 자들이 모두 그의 말씀을 듣고 말씀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말씀의 결실을 맺는 것이지 영으로 나타나 사람을 ‘놀라 쓰러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실제적이면서도 비범한 사역을 통해야만 사람의 깊은 곳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옛 성품을 완전히 들추어내어 사람으로 그것을 깨닫고 변화되게 할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성육신의 실제적인 사역이다. 매우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실제적으로 심판함으로써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성과를 거둔다. 이것이야말로 성육신 하나님의 권능이자 성육신의 의의다. 이는 성육신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말씀으로 얻은 사역 성과를 나타내고 영이 육신에 왔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방식을 통해 그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육신은 비록 평범한 정상 인성을 지닌 외형이지만, 말씀으로 얻은 성과를 통해 사람들에게 그가 권능을 가득 지녔음을 보여 주고, 그가 하나님 자신임을 보여 주며, 그의 말씀이 하나님 자신의 말씀임을 보여 준다. 이로써 모든 사람이 그가 하나님 자신일 뿐만 아니라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누구도 범할 수 없고 아무도 그의 말씀의 심판을 뛰어넘을 수 없으며 어떤 흑암 세력도 그의 권능을 능가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사람이 그에게 순종하는 것은 ‘말씀’으로 된 그의 육신과 그의 권능, 그리고 그의 말씀의 심판 때문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가져온 사역 자체도 그가 지닌 권능이다. 성육신한 것은 육신도 권능을 지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도록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역은 권능을 지닌 하나님의 영이 직접 행하는 모든 사역보다 훨씬 실제적이고 성과도 뚜렷하다. 이는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사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신의 외형은 권능을 지니고 있지 않아 사람이 가까이할 수 있지만 그의 본질은 권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도 그의 권능을 볼 수 없다. 사람은 그가 말씀하고 사역할 때도 그의 권능을 발견하지 못하는데, 이는 그가 실제적으로 사역하는 데에 더 유리하다. 그의 이런 실제적인 사역은 모두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비록 사람들이 그가 권능을 지니고 있음을 모르고, 거스를 수 없는 그의 일면과 그의 진노를 알지 못하더라도 그는 은밀한 권능, 은밀한 진노, 공개적인 말씀을 통해 말씀의 성과를 거둔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어조와 말씀의 준엄함, 말씀의 지혜로 사람의 진정한 탄복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모두 권능이 없는 듯한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 이것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 역시 성육신의 또 다른 측면의 의의이다. 즉, 더 실제적으로 말씀하기 위함이고, 말씀의 실제로 사람에게서 성과를 얻고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의 위력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 사역은 성육신을 통해 하지 않는다면 전혀 성과를 얻을 수 없고, 죄악된 사람을 완전히 구원할 수도 없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도 없고 접촉할 수도 없는 영이다. 게다가 사람은 육에 속한 피조물이고, 사람과 하나님의 세계가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성질도 서로 달라서 하나님의 영과 육에 속한 사람은 전혀 맞는 구석이 없다. 그러므로 전혀 ‘수교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사람이 영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피조물이 되어 그의 원래의 사역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 오를 수도 있고 창조된 사람으로 자신을 낮추어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며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지극히 높이 올라 영이 될 수도 없을뿐더러 지극히 낮추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역해야 한다. 이는 첫 번째 성육신의 경우와 같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을 속량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영은 전혀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속죄제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직접 육신을 입고 사람의 속죄제가 될 수 있지만, 사람은 직접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한 속죄제를 가져올 수 없다. 그러니 ‘하나님이 하늘 위아래를 몇 번 더 왕복해야지’ 사람을 하늘로 올려 보내 구원받게 할 수는 없다. 사람이 타락했을 뿐만 아니라 하늘에 올라가 속죄제를 가지고 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사람들 가운데 와서 사람들이 전혀 할 수 없는 사역을 친히 해야 했다. 매번의 성육신은 다 몹시 필요했던 것이다. 그중 한 단계라도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수모를 감내하며 성육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24. 이 마지막 단계의 사역은 말씀으로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사람은 말씀을 통해 수많은 비밀을 알게 되고, 지금까지 하나님이 한 사역을 알게 된다. 말씀을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얻게 되고, 지금까지 사람이 풀지 못한 비밀을 알게 되며, 역대 선지자와 사도가 한 사역과 사역의 원칙을 알게 된다. 또 사람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었고, 사람의 거역과 대적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의 본질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이 많은 사역과 모든 말씀을 통해 영의 사역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한 사역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성품도 알게 되었다. 네가 하나님의 6천년 경영 사역을 알게 된 것도 역시 말씀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과거에 네게 어떤 관념이 있었는지 알게 되고 그것을 버리게 된 것 역시 말씀으로 인한 것이 아니냐? 예수의 사역에서는 이적과 기사를 나타냈지만 이번 단계에서는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다.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된 것 역시 말씀으로 인한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 한 말씀은 역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한 사역을 능가한다. 선지자가 한 예언일지라도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선지자가 말한 것은 예언일 뿐이다. 선지자가 한 말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지 당시에 하나님이 하려고 했던 사역이 아니고,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는 것도 아니며, 또 사람에게 진리를 베푸는 것도 비밀을 풀어 주는 것도 아니고, 생명을 베풀어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번 단계에서 한 말씀에는 예언도 있고 진리도 있지만, 그 말씀은 주로 사람에게 생명을 베풀어 주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의 말씀은 선지자의 예언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번 단계의 사역은 예언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이고 사람의 생명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첫 단계 사역은 여호와가 한 사역이다. 그가 한 사역은 사람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해 주기 위한 것이었고, 땅에 사역의 발원지를 마련하기 위한 시작 사역이었다. 당시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고 부모를 공경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고 가르쳤다. 당시의 사람들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몰랐고 땅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으므로 첫 단계 사역에서는 반드시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어야 했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알려 준 것은 인류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고, 사람에게 없었던 것이다. 그때는 많은 선지자들을 일으켜 예언을 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인도를 받아 예언을 했지만, 그 예언은 여러 사역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첫 단계 사역은 말씀이 육신 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선지자를 통해 각 나라와 족속에게 효유했다. 예수가 사역할 당시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지는 않았다. 말세에 하는 이 단계의 말씀 사역은 역대에 행한 적이 없다. 이사야, 다니엘, 요한이 많은 예언을 했지만, 그들이 한 예언은 지금 하는 말씀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의 말은 예언일 뿐이었지만 지금 하는 말은 예언이 아니다. 내가 모든 말을 예언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너희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 내가 한 말이 모두 내가 떠난 후에 일어날 일이라면, 네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말씀 사역은 예수 시대에 한 적이 없고, 율법시대에도 한 적이 없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역사하실 때에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예수께서 사역하실 때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셨지만 그 외에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까?” 다 말씀이지만 말씀에도 차이가 있다. 여호와가 한 말씀의 본질이 무엇이냐? 그는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도록 이끌어 주었을 뿐 그 말씀이 생명과 영적인 일에 관련되지는 않았다. 어째서 여호와가 말씀한 것을 각 지역에 효유했다고 하겠느냐? ‘효유’라는 두 글자는 분명하게 알리고 직접 지시한다는 뜻이다. 여호와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지 않고 그저 어떻게 그를 경외해야 하는지 직접 가르쳤을 뿐이며 비유로 말하지도 않았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은 사람을 다루거나 징계한 것도 아니고 심판하거나 형벌한 것도 아니었다. 여호와는 그저 인도하기만 했다. 여호와는 모세를 시켜 그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만나를 거두라고 일러 주면서 날마다 해 뜨기 전에 주워 담으라고 했다. 그리고 이튿날까지 두면 썩어 버리므로 그날 먹을 양만 넉넉히 거두라고 했다. 여호와는 사람을 꾸짖거나 사람의 본성을 들추어내지 않았고, 사람 속의 생각과 마음을 들추어내지도 않았다. 여호와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었다. 그때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단순히 기계적인 행동만 할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래서 여호와는 율법을 반포해 백성들을 이끌어 주기만 한 것이다.

복음 사역을 확장하여 진심으로 찾는 사람들이 오늘날의 사역을 알고 또 진정으로 탄복할 수 있게 하려면, 너는 반드시 모든 단계 사역의 실상과 본질, 사역의 의의를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네가 교제하는 것을 듣고 여호와와 예수가 한 사역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과 세 단계 사역 간의 연계성과 차이점도 알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모두 듣고 난 뒤 세 단계 사역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모두 한 분의 영이 행한 것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들이 각각 다른 시대에 사역했고, 사역 내용도 말씀도 다르지만, 사역의 원칙은 모두 같다는 것도 알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은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가장 큰 이상이다.

―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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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도출한 결론을 기반으로: (직역) 다른 사람의 기초에서

네 편의 <성육신의 비밀>에서 발췌한 말씀